반응형 전체 글373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책리뷰 - 짧은 1년, 긴 하루 높고 낮음이 명확한 세상의 위계 속에서 우리는 자주 타인을 계급이나 스펙, 겉모습이라는 자대로 잰 뒤 쉽게 다 안다고 자만하곤 합니다. 타인을 내 기준이라는 좁은 틀 안에 통제하고 규정할 수 있다는 오만함은, 사실 사회가 만들어낸 견고한 울타리 안에서 타인의 진짜 얼굴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안이함일지도 모릅니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열리지 않는 방형(方形)의 공간이라는 고립 속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 네모반듯한 단칸방은 바깥세상의 명예나 지위가 모두 수평으로 평등해지는 장소가 됩니다. 세속의 격차와 위계가 사라진 이 수평적 관계의 방형은, 유전자의 생존 본능에 예속된 자아를 내려놓고 삶의 본질과 타인의 역사 속으로 묵묵히 들어앉는 거룩한 침좌(沈座)의 공간이 됩니다. 도시의 .. 2026. 10. 24. [시간과 타자] 책리뷰 0-5. 영화 [인 타임(In Time, 2011)] 과거와 미래 사이를 흐르는 긴장 현실에서 시간은 그 누구도 멈추거나 소유할 수 없는 절대적인 흐름입니다. 그러나 영화 [인 타임(In Time, 2011)]은 이 통제 불가능한 시간을 '화폐'라는 눈에 보이는 도구로 가공해 냅니다. 부유층은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계급의 장벽을 만들어 세상을 완벽히 통제하고 소유할 수 있다는 오만한 체계를 구축합니다. 영화 속 시간은 진짜 시간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상징적 도구이자 위계를 유지하기 위한 거래 수단이며, 궁극적으로는 영생(끝없는 미래)을 향한 취약한 인간이 열망했던 판도라 상자에 마지막에 남아있던 엘피스(Elpis, 헛된 기대)① 에 불과합니다.우리가 사는 현실도 이와 닮아 있습니다. 인간은 현실의 수정 불가한 과거의 무게와 어떤 사건이 들이닥칠지 모르.. 2026. 10. 24. [시간과 타자] 독후 0-4. 사랑, 하나 될 수 없기에 더 간절한 기다림. 통시성(通時性) E.H. 카(E.H. Carr)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를 다룰 때 두 가지 시선을 제시합니다. 특정 시대의 구조와 체계를 한순간의 단면으로 잘라 단정하는 공시적(Synchronic) 접근과, 단면의 틀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맥락 속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통시적(Diachronic) 접근이 그것입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카의 시선을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의 단상(斷想)으로 보려 합니다. 우리는 주변 타인들을 향해 얼마나 자주 공시적(단편적 규정) 폭력을 저지르고 있을까요? "너는 이런 사람이야", "우리는 연인이니 이렇게 행동해야 해"라며 타인을 특정한 순간의 단면(공시성)으로 고정하고, 내 멋대로 만든 구조 안에 박제하려 듭니다. 이는 관계를 환대가 아닌 거래.. 2026. 10. 23. [시간과 타자] 책리뷰 0-3. 사랑할수록 외로워지는 당신에게 왜 우리는 사랑할수록 외로워진다고 느껴질까? 단순한 보상심리나 결여에서 오는 심리 상태일까?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시작할 때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기적'을 꿈꿉니다. 밤새 통화를 하고,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며, 마침내 상대를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 찾아오는 달콤함.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달콤한 순간순간에는 쓸쓸함이 항상 묻어있죠. 내가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왜 저 사람의 속마음은 다 알 수가 없을까? 가장 가까운 관계인데 왜 문득 남보다 멀게 느껴지는 걸까?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생존한 호모 사피엔스의 자연선택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걸까?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레비나스의 [시간과 타자] 서문에서 일말의 단서를 찾아보길 기대합니다. 내가 선택한 책꼽문은 검정색, 내 멋대로 해석한 부분은 푸른색(.. 2026. 10. 23. 설국열차, 종즉유시 (終則有始) 얼마 전 OTT에서 영화 [설국열차]를 시청했습니다. 떡국열차 아니고요. 분명(?) 설국열차가 맞습니다.^^ 세월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바꾼 것인지 모르겠지만, 10여 년 전 보았던 그 설국열차가 아닌 새로운 시즌을 보듯 생경하더군요. 단순한 SF 영화를 넘어 거대한 문명과 동서양의 철학적 묵시론이 격돌하는 사유의 전장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미 다들 기억할 것이니 과감히 생략하고, 저의 시선으로 글을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머리칸의 지배자 윌포드(에드 해리스 분)는 절대 권력을 쥐고 시스템의 안정을 역설합니다. 하지만 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고작 꼬리칸 아이들을 부품으로 갈아 넣고, 계급 간의 학살을 주기적으로 유도하는 극단적 조치로 개체수를 간당간당 유지하는 상태였습니다. 이처럼 부패한 .. 2026. 10. 22. [시간과 타자] 책리뷰 0-2. 지속(듀레 : Durée) 레비나스 베르그손과 만나다. 박제된 영원과 시간의 지속영화 [어바웃 타임, About Time, 2013]의 주인공 팀은 우리 이성이 꿈꾸던 완벽한 능력을 얻습니다. 어두운 장롱 속에서 주먹을 쥐면 언제든 과거의 한순간으로 돌아가 잘못된 현재를 바로잡을 수 있는 능력이지요. 보통의 우리들이라면 당장 며칠전 상한가 친 주식을 사두겠죠? ^^ 주인공 역시 이 능력으로 실수 없는 하루, 완벽한 연애, 통제 가능한 일상을 조립하려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을 되돌려도 누군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었고, 떠나가는 아버지를 영원히 붙잡아 둘 수도 없었습니다. 아이가 새로 태어나는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팀은 결국 깨닫게 됩니다. 삶이란 매 순간을 내 뜻대로 계산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측할 수 없이 흘러.. 2026. 10. 21. 이전 1 2 3 4 ··· 6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