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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陰陽五行) 신(神)들의 전쟁 ※ 일요일 (Sunday - 북유럽 신화) : 태양의 신 '솔(Sol)' #출근_알람_메이커 ☞ 어원: 고대 영어 Sunnandæg (태양의 날)에서 유래함. 로마인들이 부르던 'dies Solis'(태양의 신 솔의 날)를 직역한 거임. ☞ 관련 신: 솔(Sol) 또는 수일 (Sunna) ☞ 주요 에피소드: 북유럽 신화 최고 전차 폭주러 솔(Sol) 누님이 황금 캘리퍼스급 간지 마차 몰고 하늘에서 공도 레이싱 뛰고 있음. 근데 뒤에서 침 질질 흘리는 거대 괴물 개새끼 '스콜'이 "아, 누님 한입만요!" 외치면서 눈썹 날리게 쫓아오는 중임. 솔 누님이 잡히면 지구 서버 닫히니까 개정색하고 풀악셀 밟는 건데, 이게 우리가 매일 겪는 대환장 일출·일몰 눈치싸움임. 결국 종말(라그나로크) 때 늑대(스콜)한테 .. 2026. 10. 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리뷰 3-4. 선악과 사비나의 배신 아침 출근길, 만원 지하철안 군중 틈에서 우리는 각자의 액정을 켜고 SNS 속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투영한다. 평판과 인정이라는 매끄러운 배역을 연기하는 이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정작 진짜 삶은 증발하고 실재보다 더 매혹적인 하이퍼리얼리티의 환상만이 우리 존재의 무게를 대변한다.타인의 응시와 디지털 스크린의 만남 속에 날것 그대로의 나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결국 군중의 시선이 편집하고 기획한 프레임 속 꼭두각시가 되어 살아갈 뿐이다.타인의 시선이라는 거대한 감옥이 어떻게 인간의 진실을 오염시키고 삶을 위선으로 안내하는지, 우선 나의 책꼽문을 함께 살펴보자. 진리 속에서 산다거나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군중 없이 산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한 일이다.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 2026. 10. 8.
시절 인연(時節 因緣) 시차의 긴장감이 매번 팽팽히 옥죄던 날들, 거울 속에 서로를 담으려 우리는 참으로 애썼다. 다가올 시절에는 부디 잘 닦여진 거울이 아니면 좋겠다. 물이 흐르면 수줍고 낮으면 아스라이 품고 간다더라. 수렴되지 못한 순간들은 흘려보내자.우리의 다음 시절은 염천(炎天) 아래 산골, 자그마한 시냇가에서 맞이하자. 2026. 10. 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리뷰 3-3. 디오니소스와 실수의 미학 우리는 오랫동안 구조와 계획이 만들어낸 질서만을 아름다움이라 믿어왔다. 치밀하게 계산된 건축, 인과율의 얼개에 따라 재단된 삶, 그리고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이성적 통제. 미셸 푸코는 이렇게 인간을 길들이기 위해 규격화하는 작동 패턴을 규율 권력(Disciplinary Power)①이라 부르기도 했다. 근대 이성이 정교하게 직조한 얼개 안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감시하며 체제가 허용한 정답만을 모방하도록 예속되는 전고(典故)의 굴레②를 짊어질 뿐이다. 그러나 완벽하게 조율된 질서는 역설적이게도 숨 막히는 박제가 되어 생명력을 상실하곤 한다. 진정한 삶의 에너지는 인간의 의도가 닿지 않는 가공되지 않은 디오니소스적 사유③의 카오스(Chaos) 속에서 느닷없이 발현되기 때문이다.이번에는 이러한.. 2026. 10. 7.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리뷰 3-2. 콘트라스트(contrast, 경계) 위의 시선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이 만든 보편성에 예속된다. 국적, 혈통, 그리고 성별. 나라는 주체가 단 한 번도 선택하거나 동의한 적 없는 원초적인 운명의 지수성(地遂性)①이 삶의 배경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세상은 이 던져진 조건들을 근거로 선(善)과 악(惡), 피(彼)와 아(我)⑤로 인간을 규정하려 든다. 하지만 그 얼개 안에 나의 모든 것을 던질 필요는 없다. 그것을 모두 수용할지 거부할지, 혹은 포용하고 타협할지는 결코 순응의 대상이 아니다. 쿤데라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3부에서 이 구조적 세계의 시선을 사비나의 눈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한다.여자로 사는 것, 이것은 사비나가 선택하지 않은 조건이다.선택의 결과가 아닌 것은 장점이나 실패로 간주될 수 없다.사비나에게 산다는 것은 보는.. 2026. 10. 7.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독후 3-1. 자발적 노예화 그리고 황홀경 아이들이 놀이터 시소를 장시간 수평으로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찰나의 순간 균형이 맞아 두 아이의 발이 모두 바닥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그저 순간일 뿐, 조금만 위치가 바뀌어도 시소는 이내 한쪽으로 기울고 만다. 사랑도 시소 위에서 무게추를 맞추려 끊임없이 애쓰지만 늘 기운다. 이처럼 관계에서 완벽한 수평을 이루는 균형이란 애초에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무게추는 언제나 더 많이 사랑하는 이의 방향으로 가차 없이 기울어지기 마련이니까. 레비나스의 사유를 빌려 변주해 보면 나를 제외한 모든 타인은 결코 내가 온전히 규정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무한(Infinitude) 그 자체다. 우리가 만약 관계의 균형을 강박적으로 요구한다면, 그것은 타자를 나의 전체성(Totality)속에 가두.. 2026.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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