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에서 기든스는 현대사회에서 사랑, 섹스 그리고 다른 중독들에 대해서 기술한다.
길지도 아니하고 내용도 어색하지 않아 가볍게 읽어 내려가기에 적합한 장이다.
여기서 나는 난봉꾼들에 대한 기든스의 사유에 주목하고자 한다.
본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난봉꾼들은 카사노바가 그랬던 것처럼
- 정조의 약탈자일 뿐 아니라 성적 격리로부터의 잠재적 구원자로서 - 성적 파트너들에게 특별해질 수 없다.
현대의 성적 모험가는 낭만적 사랑을 버렸거나,
또는 단지 그 언어를 설득의 수사학으로서만 사용한다.
그러므로 여성들에 대한 그의 의존은 오직 성적 정복의 역학을 통해서만 확인될 수 있다.
(...)
사랑을 주고받을 능력이 있는 독립적 존재로서 여자들을 만난다기 보다는
오히려 여자들에게 예속된 상태에 있다.
난봉꾼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녀들을 사랑하고 그리고 떠나버리는 인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실은 그는 '그녀들을 떠날' 능력이 없다.
하나의 이별은 언제나 또다른 하나의 만남을 위한 서곡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서 부터는 나의 제 멋대로 해석이다.
얼핏 우리의 보편적 상식에서 사고했을 때
난봉꾼들이 여성을 지배하고 자유롭게 떠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 속 트로피 문화는 허상일 뿐이며 여성의 존재에 지독하게 의존적으로 예속되어 가고있다는 역설이다.
더해 난봉꾼들은 수평적이고 독립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므로 결코 이별을 통해 해방되지 못하며,
끊임없이 다음 여성을 찾아 헤매는 강박적 행위의 반복이라 기든스는 설파한다.
여기서 마르쿠제의 ⓐ잉여 억압(Surplus Repression)에 대한 사유와 조응해 볼 필요가 있다.
마르쿠제는 현대 사회에서 성을 금기(禁忌)의 행위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유지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상품화하고 소비하게 만드는
ⓑ억압적 탈승화(Repressive Desublimation)의 변주로 정의한다.
다시 말해 해방처럼 보이는 쾌락 추구도 사실은 체제가 허용한 잉여 억압의 변주라는 것이며,
기든스가 서술한 난봉꾼들의 행동이 잉여 억압의 전형적인 성공사례로 봐도 무방해 보인다.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가 제공한 다양한 성적 시장의 피동적 범주안으로 쾌락을 포섭한 결과
주체는 사라지고 육체적 욕구만을 배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체제의 비판이나 연대를 통한 주체적 자유와 도야의 실천적 에너지를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짧게 본문 기든스의 사유에 나의 생각을 녹여보면,
난봉꾼들의 여성에 대한 '자유로운 지배' 이면에 숨겨진 '강박적 예속'이라는 기든스의 역설은,
남성 지배적 전승 문화인 '트로피 문화'를 거짓 해방으로 규정하고
'억압적 탈승화'의 과정 속에서
주체적 자아를 소멸시키고 소비의 사회속에 예속시킬 뿐이라고
21세기 우리들에게 설파하고 있다.
ⓐ잉여억압(Surplus Repression)
특정 지배 계급이 사회적 불평등을 유지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령 과거 혹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열정페이'으로 대변되는 과도한 노동의 강요와 같은 인위적인 억압을 말한다.
다만 현대 사회의 기술발전이 주는 노동 시간의 축소는
마르쿠제의 예상과 달리 지배 체제는 경쟁적 소비사회(장 보드리야르 저서 추천) 로의 전환을 가속화하여 잉여 억압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억압적 탈승화(Repressive Desublimation)
: 본능적인 욕망(성적 혹은 공격적 에너지)을 예술, 학문등의 열정이 긍정적 형태로 전환되는 것을 승화라 하고
이 승화(전환)된 열정이 피동적 억압에 의해 다시 원초적인 욕망이나 욕구의 형태로 복구되는 것을 말한다.

#잉여억압, #탈승화, #기든스, #마르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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