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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낭만적 사랑의 내재적 전복성 - 친밀성의 구조변동 독후 2

by 홍보살 2026. 7. 13.

3장은 저자인 기든스가
낭만적인 사랑을 빅토리아 시대 이전의 공동체 간 구조적 사랑 방식(관계)과 병치하여
20세기 순수한 관계로의 전환 과정을 통시적 분석으로 설명하고 있다.

핵심을 정리하면
빅토리아 시대 이전의 가문 간의 정치·경제적 관계의 결합,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구조와 규칙의 사유를 빌려보면
낭만적인 사랑 이전의 시대에 결혼은 사랑이 아닌 공동체 간 소통의 체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시대에서 진화한 낭만적인 사랑은
남성의 임노동 활성화를 기점으로 개인 간의 서사가 첨부되고 모성애라는 새로운 기준을 덧씌운 형태로
여전히 기만적이며 위계적 질서를 함구한 채
이상화된 사랑으로 여성들을 객체화 시켰다는 것이다.

다시말헤 시대 변화에 약화된 남성들의 지배와 통제를 보편화의 범주 안으로 재편입시키는 과정이라 하겠다.

아래는 나의 책꼽문이며 붉은 글씨로 나의 생각을 첨하였다.
마지막 부분에서 기든스의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사유를 볼 수 있다.

내재적 전복성
열정적 사랑은 틀에 박힌 일상생활과는 구별될 뿐 아니라 실제로 그것과 갈등하기도 하는 어떤 급박함으로 특정지워진다.
타자와의 감정적인 연루가 너무도 강렬히 스며들어서 그 사람 또는 그 두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통상적 책무를 무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열정적 사랑은 거의 종교적이라고 할 만큼 진지한 열의를 불러일으키는 매혹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
점잖은 여성들의 성적인 방종이 널리 수용된 것은 오직 귀족 집단에서뿐이었다.
성적인 자유는 권력에 뒤따르는 것이었으며 또한 권력의 표현이었다.
여성이 자기의 독자적인 성적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재생산의 요구와 일상적 일로부터의 충분한 해방이 전제되는데,
이는 오직 특정 시대 특정 장소의 귀족 계층 여성에게만 가능한 것이었다.

☞ 베카리아가 세운 죄형법정주의 원칙 중
"법이 없으면 범죄가 없고, 법이 없으면 형벌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법이 있다는 것은 곧 범죄가 존재한다는 뜻이다"라는 역설이 성립되듯
섹스가 재생산의 도구로 지배적이었던 여성에게도 권력의 표현이었다는 것은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역설적 인정이라고 봐도 좋겠다.


낭만적 사랑은 숭고한 사랑과 열정적 사랑 둘 다로부터 구분된다.
낭만적 사랑은 개인의 삶에 어떤 서사의 관념을 도입하는데
이 이야기는 개인화되었고,
더 넓은 사회적 과정에 대해서는 어떠한 준거점도 가지지 않는 어떤 개인적 서사 안에
자아와 타자를 삽입하는 그런 이야기가 되었다.
(...)
낭만적 사랑의 애착 속에서는 숭고한 사랑의 요소들이 성적인 열정의 요소들을 지배하는 경향이 있다.
(...)
사랑은 섹슈얼리티와 단절하면서도 그것을 끌어안는 것이 되었다.
미덕은 이제 모두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 이상 단지 순결만을 뜻하지 않게 되었고,
특정한 타자를 특별한 사람으로 가려내는 성격상의 특성을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
(...)
모더니티는 이성의 지배와 분리될 수 없다.
이는 신비주의와 도그마의 전횡적 지배 대신
물리적·사회적 과정들에 대한 합리적 이해가 우선권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성은 감정을 위한 자리를 갖고 있지 않다.
감정은 그저 이성의 영역 외부에 놓여 있는 것이다.
(...)
18세기에 이르러 쭉 이해되어 온 바대로의 '로맨스'는 아직 우주적 운명에 대한 이전의 개념화에 공명하는 요소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요소들은 열린 미래를 기대하는 태도와 혼합되었다.
로맨스는 더 이상 허구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명백히 비현실적인 가능성들의 마술이 아니게 되었다.
그 대신 이제 로맨스는 그 삶이 거기 닿아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원칙적으로는) 심리적 안전의 한 형태이자 또한 미래를 통제할 수 있는 잠재적 통로가 된 것이다.
(...)

낭만적 사랑이란 여성의 정신을 무가치하고 불가능한 꿈으로 채우기 위해 남성이 여성에게 가한 음모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 가정과 작업장이 분리됨에 따라 아버지의 통치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
가부장적 권위로부터 모성적 애정에로 가족의 중심이 옮겨간 것이다.
이석은 낭만적 사랑이 전파한 가치들 속에 직접적으로 플러들어갔다.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이미지는 활동과 감성에서 '두 개의 성' 모델을 강화하였다.
인성적 특성으로서의 모성과 여성성이 결합된 것이다.
(...)
"남편은 나애와 아내의 행위를 지배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의도를 지배한다.
남편은 법률에 의해 통치하지만 아내는 설득에 의해 통치한다.
여자의 제국은 부드러움의 제국이다.
그녀의 명령은 애무이며 그녀의 위협은 눈물이다."
(...)

영역 구분이 일어나면서 사랑을 키워 가는 일은 전적으로 여성들의 과업이 되었다.
낭만적 사랑의 관념들은 분명 여성의 사정 내에서의 종속과 외부 세계와의 상대적 분리와 동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관념들의 발전은 한편으로 여성들의 권력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즉 박탈에 직면하여 일어난 자율성의 모순적 주장이었던 것이다.
남성들은 집안의 안락함을 정부나 매춘부의 섹슈얼리티와 분리함으로써
낭만적 사랑과 열정적 사랑의 긴장에 대처할 수 있었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남성들의 냉소주의를 지탱한 것은 바로 이 구분이었다.
이 구분은 '점잖은' 사랑의 여성화를 암묵적으로 수용한다.
(...)

여성들은 낭만적 사랑의 이상과 모성의 융합에 힘입어 친밀성의 새로운 영역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
낭만적인 소설 또는 이야기의 열광적 소비는 어떤 의미에서 수동성의 증거이다.
사람들은 보통의 세상에서 부인된 것은 환상 속에서 구한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낭만적 이야기들이 가진 비현실성은 어떤 취약성,
즉 좌절된 자기 정체성을 실제 사회생활에서 이름 짓지 못하는 무능력의 표현이었다.
(...)

☞ 남성의 임노동 활성화는 여성의 가사노동과 재생산의 은폐를 전제로 한다.
낭만적 사랑과 모성애는 가사노동을 경제적 활동이 아닌 본유적 사랑의 발로로 착시하고
여성의 소외를 정당화하는 기만적 이데올로기이자 고도화된 객체화가 아닐까?



낭만적인 사랑은 열정적 사랑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그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것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다른 것이다.
(...)
낭만적 사랑은 느닷없이 단절시켜버리는 열정적 사랑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개인들을 더 넓은 사회적 상황으로부터 떼어낸다.
예감되지만 변화될 수 있는 미래에 지향된 어떤 장기적인 삶의 궤적을 제공한다.
낭만적 사랑은 그 최초의 기원에서부터 친밀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낭만적 사랑 자체가 어떤 정신적 커뮤니케이션,
즉 부족한 부분을 메워 주는 성격을 띠는 영혼의 만남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낭만적 사랑에 빠진 개인에게 그 사랑이 대상인 타자는,
단지 그가 딴 사람 아닌 바로 그 삶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결여를 메꾸어 줄 수 있는 그런 존재이다.
(...)
이 결여가 직접적으로 자기 정체성과 관련되는 것이다.
낭만적 사랑은 불완전한 개인을 완전한 전체로 만들어 주는 어떤 것이다.
즉 초월성에 맞물리는 어떤 것이 되었다.
(...)
한 사람에게 매달려 그 사람을 이상화하는 것이 하나라면,
미래가 발전해 나갈 길을 기획하고 펼쳐 보이는 것이 그 두 번째 것이다.
(...)
로맨스는 박탈당한 자의 반사실적 사고이며
19세기 이래 쭉 개인적 삶의 조건을 다시 만들어 간 주요한 작업에 개입해 왔던 것이다.
타자에게 빨려 가는 것은 열정적 사랑의 또 다른 전형적 특징인데,
낭만적 사랑에서 이것은 '추구'라는 특징적 지향 안에 통합된다.
추구는 하나의 오디세이 그 안에서 자기 정체성이 타자가 자기를 발견해 줌으로써
비로소 인정받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러한 오디세이이다.
(...)
타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사실 상호적인 서사적 전기를 써 가는 과정인 것이다.
(...)

낭만적인 사랑 복합체가 가진 내재적으로 전복적인 특징은,
☞ 내재적 전복성(Internal Subversiveness : 체제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경향성)
사랑과 결혼과 모성의 결합에 의해,
그리고 진실한 사랑이란 일단 발견되기만 하면 영원하다는 관념으로 인해 오랫동안 억눌러져 있었다.
결혼이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영원했던 때에는,
낭만적 사랑과 성적 파트너십이 확실히 구조적으로 적합한 것처럼 보였다.
그 결과 종종 오랜 불행의 나날이 초대되기도 하였다.
결혼하기 위한 맹세로서의 사랑과
일단 결혼한 이후 계속해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요구 사이의 연관이 워낙 빈약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이 실질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임노동을 남편의 영역으로 배당하고
아내에게는 가정을 배당한 성별 분업 덕분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점잖은' 여자라는 표시로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결혼에 감금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던가를 알 수 있다.
남성들로 하여금 싹트는 친밀성의 영역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 동시에
또한 여성들로 하여금 결혼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도록 한 것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낭만적 사랑은 남성 중심적 지배 질서의 기만적 재편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여성들에게 자신만의 주체적 삶을 기획하는 '서사적 정체성'의 전복적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사랑을 매개로 내일을 향해 자신의 삶을 던지는 이러한 투사는 여성들에게 주체적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으며,
나아가 제도적 구속력을 넘어선 기든스식 '순수한 관계'로의 체제 전환을 이끄는 결정적 정초가 되었다.

낭만적 사랑 기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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