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그레인지는 3장에서 질투의 원인과 해결책, 완벽주의와 노력의 차이점을 비교하고 감정 쓰레기를 삶의 자양분으로 삼아 가야 하는 당위성을 설파한다.

난 여기서 스피노자와 호네트의 통찰을 적절히 버무려 변주하고 싶다.
우선 스피노자는 저서 [에티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간은 본성상 질투적이라는 것, 즉 동배의 무력함을 기뻐하고 동배의 덕을 슬퍼한다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위 문장만 놓고 보면 "원래 인간이 그렇지 뭐~~" 하며 셀프 위로로 종결할 수도 있다.
한편 악셀 호네트는 저서 [인정투쟁]에서
"인정의 대척점에 모욕이나 굴종과 같은 '무시'라는 범주가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두 현자의 생각을 버무려보면 나의 사유에 근접한다.
스피노자 형님은 오직 자기 자신의 실재성을 직시할 때만 진정한 자기만족을 충족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현실 속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려 든다.
인간이 느끼는 질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인정욕구를 충족하고
동시에 코나투스를 증진하려는 순환과정 속 왜곡된 열망의 배설물이 아닐까?
결국 다수의 현자들과의 조응으로 도식화해 보면,
질투는 인간 자아 실현 과정 속 필수 조건인 '인정'이 좌절되고 '무시'될 때 발현되는 심리적 방어기제로 볼 수 있다.
저자는 질투가 일어날 때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고 멈추는 에포케(판단 보류)와 '내면적 인지 전환'만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이 부분은 사회학적 시선으로 다원적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질투의 뿌리가 타인과의 관계적 결여에 있다면,
대안 역시 스피노자 형님이 말한 내면의 수양에만 머무를 수 없는 것 아닌가 !
그런 의미에서 호네트가 제시한 사회적 상호인정의 형태와 연민 그리고
서로의 가치를 승인하는 거시적 차원의 '연대'가 더 본질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래는 3장(왜곡된 공포)의 원문이다.
=====================
강력하고 두서없는 감정인 질투심은 편도체를 활성화시킨다.
그래서 질투심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전에 누군가를 비난하고, 탓하거나, 욕하거나
악의적인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때때로 질투심은 열정적인 불꽃이 되지만,
그 불꽃은 금세 사라진다.
(...)
승자는 오직 한 명일 수밖에 없다는 결핍적 사고가 겉으로 드러난 질투심이다.
질투심은 주로 비교와 수치심에서 나온다.
(...)
질투심은 다른 사람의 성공에 관심을 두게 만든다.
다른 사람이 성공하면,
자신의 가능성과 성취감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질투심은 어찌 보면 자신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
질투심의 뿌리에는 자신이 사람답지 않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의 뿌리에는 버려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다.
(...)
질투심에 휩싸이는 순간,
질투심이 가라앉도록 자기 자신에게 잠깐의 여유를 주자.
질투심을 가라앉히는 동안에는 자신을 관대하게 대하고
스스로 평가하지 않도록 하자.
(...)
노력의 뿌리에는 실패를 피하려는 욕구가 있지만,
완벽주의의 뿌리에는 실패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노력의 에너지는 성공을 향해 전진하는 데 쓰이고,
완벽주의의 에너지는 실패로부터 도망치는 데 쓰인다.
(...)
학자들은 완벽주의가 좋은지 나쁜지,
또는 기능적인지 쓸모없는지를 두고 혈전을 벌인다.
하지만 그들은 완벽주의가 성과와 업적을 내는 데 좋은지 나쁜지에만 집중할 뿐,
그것이 내면 깊숙이 만족감을 주는 내적 성취감에 좋은지 나쁜지에는 관심이 없다.
(...)
나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공포를 무시하는 것보다 그것을 직시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감정적으로도 더 힘들다.
(...)
감정 쓰레기 더미는 반드시 어딘가로 배출된다.
(...)
감정 쓰레기를 분해하는 일은 거름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유사하다.
뭔가 부족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달리
감정 쓰레기를 보고 대면하는 작업은 감정으로 거름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감정 쓰레기가 되거나 말끔하게 치워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악취가 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덮어놓기만 해서는 안 된다.
거름과 공포 모두 공기가 부족하면 악취가 더 심해진다.
자주 뚜껑을 열어 거름을 뒤집으며
자신의 공포를 주시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더 빨리 분해된다.
(...)
감정 쓰레기를 치우는 과정을 거름 만드는 과정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하다.
왜냐하면 두 과정 모두 제대로 해내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포를 재빨리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공포를 끄집어내서
대면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거름이 자양분이 되어 식물을 성장시키듯,
우리의 감정으로 만든 거름이 새롭고 더 좋은 행동,
이야기와 신념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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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한 구절로 마무리한다.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Fearless, #질투, #무시, #인정, #연대, #나를단단하게만드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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