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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베이스 개론

1. 컴퓨터의 역사(1) - 인문학 그리고 융합

by 홍보살 2024. 11. 21.

컴퓨터는 진공관 트랜지스터 이전에는 기계식 계산기 수준이었고 그 최초는 파스칼린 (Pascaline)이라고 1642년 블레즈 파스칼이 개발한게 시초로 알려저 있다.
하지만 정초된 곳으로 흘러가보자면 단군이전의 시대로 달려가봐야 한다.
간략하게 다룰것이며 상세한 상식은 각자의 몫으로 할것이니 스치듯이 보면 좋겠다.
 
BC 6세기로 넘어가 보자.
우선 "수"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유명하기도 하고 수많은 수포자들 양산의 밑거름이 된 사람 피타고라스다.
"철학자( philosophia = philos + sophia )" 일명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단어도 이사람이 대중화 시켰고
음고도 수학이라고 말한 철학자(?)이며
세상 만물을 "수"로 표현하고 이해하려 광신적으로 집착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피타고라스의 정의"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다만 제자 히파소스를 살인 혹은 추방했다는 설화에서 보듯이
과도한 집착(기표가 아닌 기의로 수의 신분을 강제 승격)이 교조적 신앙으로 변질되어 그 끝은 좋지 못했다.
단순히 유리수에 대한 집착과 단순 권력욕이라기 보다는
인지부조화와 세월을 넘지못한 보수화의 문제로 바라보는 건 어떨가 생각된다.
 
그 다음은 중세로 바로 넘어가 보자.
메타와 연역적 논리학이 주류이던 중세에 스콜라 철학이라는 철학사조가 생기는데
신의 존재를 귀납적으로 증명해 보이려는 시도들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되겠다.
여기엔 토마스 아퀴나스가 가장 유명하고 이때가 가장 부흥기라 보면 된다.
물론 그가 말한 신의존재 증명이라는 말도 내가 보기엔 억지스럽고
단순한 래토릭에 불과해 보인다.
다만 증명 불가능한 순수함만을 강조하는 기존 종교관에서 학문적으로 논증하려는 시도에 의미를 두면 되겠다.  
 
 
이에 영향을 받고 중세 귀납적 사고와 경험론의 대가로
유명한 프란시스 베이컨이 빠질 수 없다.
"모든 사상은 모방이다."
"아는것이 힘이다."
짧지만 강렬한 경구이다.
"속담 중에 모르는게 약이다" 라는 말로 희석시킬 수 있으나
모르는 게 약이다 라는 말에는 어설프로 옅은 지식으로 발생한 확증편향보다는
흰 도화지가 오히려 나을 것이라는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확증편향이야 말로 반대를 위한 반대논리를 만드는 교조적 사고의 정초가 된다.
"책 한권 읽은 놈이 제일 무섭다" 라는 말이 남의 말 같지 않을 것이다.
구디, 판교, 가디, 상암등의 개발자들 주서식지에 석식과 반주를 하고 있느라면
너도나도 빌게이츠요, 잡스다...  
순간 홍안으로 변하는 건 왜일까?
 
다음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데카르트다.
이 철학자는 교부철학의 시대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시점에서 정말 호기롭게
자신의 논거(저서 "악마의 사유")를 갈파했고
이후 수많은 경험론자들에게 영향을 준 인물이다.
중세 스콜라 혹은 교부철학의 시대 신의 부정 혹은 메타속의 신의 존재를 부정(혹은 의심조차도)하는 것은 목숨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론 데카르트 역시 여느 스콜라 철학자처럼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에너지를 소모했으나
개인적으로 보기에는 이신론에 가깝다고 볼수 있다.
가장 유명한 경구인 "cogito가 '생각한다', ergo가 '고로', sum이 '존재한다"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유명한 경구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데카르트의 경구 중 이시대의 개발자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올 말이 있다.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지만, 의심하는 나 자신은 의심할 수 없다"
회의론적 사고로 치부할 수 있지만
이 부분이 피타고라스와 같은 인지부조화의 단초를 제거하고 지속적인 사고의 확장성에서
월등하며 오히려 겸손하다.
물론 교부철학자들이나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사상적으로 유용된 부분이 있긴하나
그의 순수함까지 폄훼할 수는 없다.
invisible hands의 애덤스미스가 보수 경제학자들이나 위정자들에게 그들에게 유리한 경구만을 발췌해 유용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데카르트의 사유는 말 그대로 전두엽의 진화를 무한 루프속에 가둔다는 의미에서 2024년 개발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데카르트 & IT

 
다음으로는 앨런 튜링을 빼놓을 수 없다.
컴퓨터 파파라 불이우는 앨런 튜링을 말하려면 아주 잠시 다시 단군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왜냐면 그의 철학사조가 기본적으로 자연철학이니까....
철학의 파파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로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고 세상의 무한한 진화를 시간과 연계해서 설명한 불근원론자 헤라클레이토스
과학의 파파로 불리우는 원자론의 데모크리토스까지..
앨런 튜닝은 기계의 인간사고화의 가능여부와 윤리적인 문제까지 고찰한 철학자라 나는 생각한다.
"수"를 기본으로 하지만 위대한 수학자는 역시나 철학자이다.
노벨상, 수학의 필즈상이 존재한다면
컴퓨터 과학분야에서는 1966년부터 컴파파 앨런 튜링의 이름으로 튜링상이 있다. 
데이터베이스의 두 거장인 DBMS 창시자 버크만과 RDBMS 창시자 커드 역시 튜링상 수상자이다.
 
이외에 하이데거를 빼먹을 수 없겠지만
일본산 자동차도 그 성능이나 디자인의 완성도를 떠나 구입 할 수 없는 나의 입장에서
(정확히는 친일 밀정들 뼈속까지 투사된 자본주의 맹아론을 극혐한다.)
나치에 부역하고 삶속에서 말과 행동의 간극이 너무나도 컷던 
아가리 파이터로써(대한민국이라면 시인 서** 와 싱크로율 90%이상으로 보인다) 그를 인정하기 어렵다.
 
여기까지 데이터베이스와 관련지어 보면 지엽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
기다리라.. 다음장에서는 공돌이들에게 즉자적으로 와닿을 수 있는 얘기를 할것이다.
 
이장을 마치며..
미메시스의 개념에서 현대 철학이나 과학에서 현현하기란 쉽지 않다고 본다.
위대한 빅히스토리 "사피엔스"에서 하라리도 알고보면
장자크 루쏘(에밀과 사회계약론만 부각)의 "학문예술론"과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마르크스까지 그 맥을 같이한다.
"농업혁명으로 정착민이 발생하고 사유재산의 개념의 발생이 수렵 생활시대의 인간보다 행복할까?"
철학의 저수지인 칸트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베이컨의 말처럼 모든 창작이나 사상은 모방이다.
현현된 창작이라는 것도 결국은 역사속 현자들의 고민과 개인의 깊은 사유의 융합에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모든 사유의 기본은 원인에 대한 열정적 분석과 반복적 사고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학습의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론을 지향한다.
어떤 논리를 무작정 암기할때의 강한 휘발성을 줄여주며 대상에서 주체로의 전환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오라클, MS-SQL, Mysql, Postgresql, Sybase등등의 DBMS개발사에서 제공하는 각종 API에 광분하기보다는 배경과 원인을 이해하는데 에너지를 소비하자.
 
진화 생물학적으로 종래까지 인간은 변연계의 발달이 생존과 유전자 전달에 유리한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작금의 개발자들의 코딩습관도 진화론적 선택인가?
뇌 가소성은 이미 입증된 과학이라는 점에서 일면 타당하기는 하다.
다만 2024년 현재 숲속에 작은 소리에 반응해 본능적으로 몸을 피해야했던 수렵 시대가 아니지않은가.
 
헤겔의 시대정신은 신의 정언적 진리의 부정에서만 역사적 가치를 부여받는건 아니다.
진화의 트랜드도 시대에 맞게 유동한다.
단연코 이시대 생존과 번식이 요구하는 것은 전두엽의 시대적 진화다.

중세 유물론이 지배하던 시대의 반동과
칸트부터 체계화된 이신론
그리고 지금 2024년 디지털(유물론)이 지배하는 시대 ..
이 역사의 발전적 루프에서 뭐가 떠오르나?

"내용(지식)없는 사상은 공허하고,
개념(메타인지)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 순수이성비판 칸트"
맹목은 피지배자로 회기를 가속화 할 뿐이다.

쫄지말자.
동서고금 "중용" 은 인간사 필연적이고
헤토로토피아는 반드시 존재한다.
지금은 과학과 메타의 융합이다.
 
추천서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니콜라스카" 를 꼭 읽어보길 강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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