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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본위적 배려(Self-oriented Caring)

by 홍보살 2026. 5. 18.

농구는 5명이 한팀을 이루어 경기가 진행된다.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분명 존재하긴 하나 각 선수는 고유한 역할을 부여받아 팀의 조화를 이룬다.
특히 포인트 가드(PG)는 코트 위 야전사령관으로서 경기 흐름을 조율하고 협력의 중심이 된다.
개인적으로 제이슨 윌리엄스나 존 스탁턴 그리고 국내 선수 중에서는 김승현과 같은 화려한 PG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화려한다 한들 PG의 숙명적 이타성은 숨길 수 없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역할을 넘어 동료를 배려하며 경기의 승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태도를 내포한다.

시카고 불스가 한창 우승할 당시 마이클 조던이나 스카티 피펜은 잘 기억할지 모르나 하퍼라는 PG는 크게 기억되지 않는다.
반면 조던은 하퍼에 대해 팀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득점력을 기꺼이 희생하고 강력한 수비로 백코트를 지탱해 준 위대한 동료로 지목한다.
실제로 하퍼의 적극적인 수비 능력으로 인해 조던이나 피펜의 수비부담이 줄어 득점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역량을 넘어 공동체 내에서 역할 분담과 상호 의존성을 통해 완성되는 성취라는 점에서
일상 속 배려에 대한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는 큰 예시가 된다.

본위적 배려


배려는 일반적으로 이타적 혹은 호혜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어 파르마콘(오늘날 약국을 뜻하는 Pharmacy라는 단어의 어원)이 약과 독을 동시적으로 의미하듯
배려 역시 이타성의 덕목 뒤에 권력 관계와 자기중심적 동기가 공존한다.

이에 수많은 현자들이 배려뒤에 숨어있는 권력에 주목했다.

이러한 단점 중 현실에서는 과실(過失)로 인한 위해의 비율이 높겠으나 분명 본위적 배려(Self-oriented Caring)도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다양한 군집내에서 다양한 주체들과 조우한다.
이때 사람들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게 된다.
비지니스 관계인 경우는 갑을 관계가 명확하므로 발화 자체가 수행성을 띄는 경우가 많으니 번외로 하고,
사교 모임의 경우가 늘 이슈가 된다.

우선 발화(말하는 것)에 대한 인간의 욕구의 강도에 대한 경구 하나를 소개한다.
예수 탄생 직전의 철학자 키케로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정신적인 허기는 육체의 배고픔보다 격렬하다.
마음에 쌓인 말을 뱉어내고 싶은 욕구는 굶주린 사자가 먹이를 찾는 것과 같다."



어색한 사교 모임에서 발화를 주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다.

적막한 분위기를 해소하여 소통의 시작을 만들어 주는 용기있는 행위.

그리고 리치(Leech)가 말한 겸양의 격률(Modesty Maxim : 자신에 대한 칭찬의 최소화, 자신에 대한 비방의 최대화)에 입각한 스스로를 화두의 안주로 격하시키는 이타심.

마치 농구코트의 PG의 모습과 매우 흡사해 보인다.

이러한 장점과 이타성에도 불구하고 발화는 늘 파르마콘과 같이 위험성이 함께 내재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화용론에서 수행발화의 행위 주체가 청자인 경우(가령 빵셔틀을 유도한다던가)

라캉이 말하는 심리적 투사(실제 타인 혹은 군집의 결핍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배려자 자신의 심리적 결핍이나 불안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행위)

스노비즘(Snobbism : 방귀좀 낀다고 자랑질하는 나 잘낫다 속물근성?)

자기중심적 발화(Egocentric speech : 타인의 관점이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이나 욕구만을 중심으로 발화)

사람은 기본적으로 누구나 마이클 조던(SG), 스카티 피펜(SF) 처럼 주연이고 싶어하는 인정 욕구가 있고
특히나 발화의 욕구는 키케로가 말한 것 처럼 사자(사지는 배부를때는 사냥하지 않는다.)의 식욕과 견줄 정도인 것이다.

역량이란 말이 있다.
단순히 능력이나 기능의 의미만이 아니라 기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기억속 대화의 장을 유심히 반추해 보면
발화 자체가 대상에 대한 질문으로 청자의 화자 전환을 유도하는 사람이 있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멀어서 힘들지 않으셨어요?", "우리 아이도 선생님과 같은 일을 배우고 있는데요. 하시는 일 전망은 어때요?"

반면에 타자를 칭찬하는 듯 보이지만
말미에 자신을 그 사람과 동급이거나 우월성을 포장하려는 발화도 있다.

모두는 아닐지라도 대부분 사람들이 발화 그 자체를 욕망한다면 타인의 역량을 보장하는 것 또한 배려가 아닐까?


연대는 관계로 생성되고 관계는 언어로 소통한다.

발화가 진실보다 흐릿한 타당성을 지향하는 수평성과,
배려가 권력과 자기보호 사이의 긴장을 품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소통의 출발은 겸양의 격률 기반한 배려를 가득 품고
긴 호흡으로 관계를 조망해 보는건 어떠할까?

이 글을 쓰는 나의 얼굴이 붉다.


"너는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나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도덕 형이상학 정초]"




#본위적 배려, #Self-oriented Caring, #스노비즘, #자기중심적 발화, #Egocentric speech, #겸양의 격, #Modesty Max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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