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노를 집단적, 개인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글에서 사회 부조리 해소를 위한 긍정적 저항의 표현인 앙가주망(Engagement)적 분노는 번외로 한다.(개인 취향을 말하자면, 폭력적이며 극단적 앙가주망은 지양한다.)
따라서 이 글은 정치하게 구조화된 수사적 표현으로 조장되는 집단적(소시에타스: Societas) 신념에 따른 분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 앙가주망(Engagement) : 사회 부조리에 대한 식자층의 적극적인 참여
♠. 소시에타스(Societas) : 혈연관계가 아닌 이익 공동체

타인에 대한 분노는 본질적으로 격렬하고 응보적이며 네거티브로 쉽게 예단되나 분명 양가적이다.
분노의 노출 양상은 다양하여 선택적으로 드러낼 수 있지만,
그 근원의 인지와 뒤따르는 실망감은 상시 긍정을 내포한다.
이는 샤르트르가 말한 자기기만의 과정을 통해 대자적 존재로 나아가는 여정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 대자적 존재 : 샤르트르의 대자 존재를 인용한 것으로 주체적인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 가는 존재가 됨을 말한다.
타인에 대한 분노는 단순히 직접적 실망감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는 불확실성이 정초된 생득적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고통이 고통을 해소한다는 생각은 기만이고 허구일 뿐이다."
☞ [타인에 대한 연민 中, 마사 누수바움]
인간은 자궁 속 어머니와의 합체 상태를 준거 삼아,
아기의 갈애와 어머니의 연민의 균형 속에
태생부터 유아기까지 긴 시간 동안 대타자(절대자)인 어머니와의 투쟁의 시간 속에서 성장한다.
이때 내재화된 나르시시즘의 점도가 생애 내내 인간의 기질을 흔든다.
♠. 갈애(渴愛) : 욕망(Desire : 현실화 불가능한)에 대한 부정적 집착
인간은 생애 전반에 걸쳐 무화, 타협, 수용의 반복적 선택 과정을 걷는다.
자기기만이라는 완충지대에 숨어 고립될 것인지,
아니면 니체의 Hammer로 내리쳐 선악과 피아의 이항대립적 사고의 경계를 허물고
연민이라는 충만한 감정을 마주할 것인지.
"사람은 빛의 형상을 상상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의식화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
☞ [분석심리학 中, 칼 구스타프 융]
♠. 스스로 소환한 神에 의지하려는 인간의 근원적 나약함을 파고들어
그들을 분열시켜 군림하기 위한 전제적 권력자들의 이분법적 허상의 경계가 파괴된 세상을 꿈꾸어본다.
인간은 개체별 생존이 불가능한 존재이며 함께함으로써 공진화했다.
분노와 두려움은 마치 순환 호출처럼 이어지며
이때 타인의 시선이 나의 선택을 강요한다.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분노하고, 그 분노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한다"
☞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中, 루크레티우스]
누구나 전인적이며 무결점의 인간을 지향하지만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들에게 두려움과 결핍은 근원적이며 극복이나 회피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야스퍼스의 "한계상황"에 대한 정의을 차용했다

주변을 돌아본다.
정확한 분노의 원인조차 알지 못한 채 겉돌고 있는 이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은 흔히 논증을 회피하며 취향의 문제로 진실을 은폐하고 자신을 방어한다.
이러한 이들에게는 니체의 Hammer(=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은 늘 주저한다.
인간은 지구상 어떤 동물보다 태어난 후 장시간 무력하다.
AI가 창궐하는 시대의 진보한(듯한) 사피엔스도 혼자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모든 노예 근성을 그대로 상속받은 것이 바로 "나"이다.
따라서 Hammer가 필요한 것도 "나"이다.
민낯이 들춰질 때마다 습속이라 말했고 그럴싸한 방어기제로 포장했다.
악순환에도 여전히 괴란(愧赧)쩍음은 그나마 작은 위안이다.
분노 없는 성찰이 밋밋해서 일까?
스스로 피암시의 시간을 할당함에도 난 늘 사후에 인지하고 반응한다.
초인은 먼 산 넘어에 있고 여전히 나는 어머니의 자궁 속을 갈애한다.
♠. 초인(위버멘쉬:Übermensch) : 피동적이 아닌 스스로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을 가진 주체적 인간
"산 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 [시지프 신화 中, 알베르 까뮈]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만약 네가 자신을 잘 심판할 수 있다면 그건 네가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 [어린 왕자 中,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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