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단언을 흔히 접한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가 한 유튜브 영상에서 이런 말을 한 기억이 있다.
"사람 성격 안바뀝니다. 그런데 성품은 바뀐답니다."
이렇듯 성품이 후천적이며 주체적인 선택의 결과임은 자명하다.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C(Choice)이라는 숭고한 자유의지에 과연 얼마나 진정한 자율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
푸코가 말하는 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이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길들이고 형성하는 과정을 상기해보면 섬뜩하다.
푸코의 말처럼 우리의 선택은 이미 사회적 구조와 담론에 의해 예속된 허상에 불과할 수 있다.
존재하는 것은 변하지 않으며 하나이다
라고 주장한 파르메니데스도 근원은 하나요
변화하는 모든것은 환상이라고 설파했다.
물론 헤라클레이토스는 반대로 말했지만 말이다.
니체는
나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여럿이고,
변화하면서 그대로 남아 있으며,
알고, 느끼고, 바라는 존재만이 나의 유일한 현실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라고 말했고 실제로 정신분열 증세를 겪다가 죽었다.
정신분석 학자들은 이러한 다원적 자아를 군도로 표현하기도 한다.
난 어떤 이론도 맹목적으로 긍정하지도 않고 배척하지도 않는다.
이래서 철학은 평생 함께 가는 과정이지 명확한 결론은 없지 싶다.
군집내 인간은 분명 다양한 페르소나로 자신을 보호한다.
다중 인격이란게 뭐 별게 있을까?
한쪽에서는 딱 오늘까지만 만나게 묵고 내일부터 다이어트 하자고 유혹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참으라고 설득한다.

어떤것이 진짜 나일까?
자아는 역동적이다.
호흡이 붙어있는 내내 뇌가 수용가능한 범위내에서 만들어지고 동시에 소멸한다.
문제는 내속에 잠재된 다양한 자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닐까?
언제나 최선의 자아를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 역시 나를 좀먹는다.
모든 선택에 대한 존엄을 인정하면 결과는 부차적일 뿐이다.
나의 인생에서 불변의 당위성이란 것은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모든 선택은 늘 내게 존중받는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 에픽테토스

#에픽테토스, #규율권력, #존엄, #페르소나, #헤라클레이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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