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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조국의 법고전 산책] 독후 2. 17세기: 사회계약론의 발화와 폭군방벌론

by 홍보살 2026. 1. 22.

토마스 홉스는 잉글랜드 내전(일명 청교도 혁명)의 극심한 혼란을 목도했다.

1651년 출간된 [리바이어던]에서 그는 인간의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규정한다.

그의 핵심 사상은 평화를 위해 개인들이 모든 권리를 절대적 주권자(통상 군주)에게 양도해야 한다는 사회계약론이다.

마키아벨리와 함께 강력한 군주제를 옹호한 배경에는 유사한 시대적 격랑이 존재한다.

마키아벨리는 분열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잦은 외세 침략과 내적 혼돈 속에서 군주의 강력한 통치를 구상했고,

홉스는 영국 의회와 군주 간의 권력 다툼이 초래한 무정부적 혼란을 직시하며 절대 주권을 역설했다.

그들을 단순한 군주제 옹호자로 치부하여 악마화할 필요는 없다.

정치 제도의 변천은 본질적으로 위계적인 집단 간의 긴장과 투쟁의 산물이며,

역사가 끊임없이 순환의 도정에 있다는 통찰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홉스의 경우 권력 분할에서 오는 혼란에 대한 강한 거부감에서 비롯된 견해이며,

이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제도를 둘러싼 인간의 갈등이 혼란을 야기한다고 본 점이다.

이 지점에서 몽테스키외와는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다.


추가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홉스에게도 저항권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물론 혁명을 배제하고 포기될 수 없는 '자기 보존'의 권리 범위로 한정한다.

이는 양도된 주권자(전제 군주)의 형벌 정도에는 저항할 수 있다는 입장일 뿐 로크가 주장한 역성혁명은 홉스의 시각에서 상상조차 몬할 일이다.

12/3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아스팔트 성조기/태극기부대들에게서 저항권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된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저항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조항이 없으나

헌법 전문의 (이승만 몰아낸)4·19민주이념 계승과 제1조(국민주권) 제10조(인간의 존엄성) 등을 근거로

학설과 판례상 인정되는 초법적인 국민의 권리로 공권력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여 다른 법적 수단으로는 불가능한 경우에만 제한적 행사 가능하다.

아스팔트 태극기부대 따위가 마구잡이로 외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키세스 시위대 (원본 missyUSA)



1689년 권리장전이 반포되던 해 존 로크는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을 발표했다.

원제에서 보이듯 두 개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출판 연도와 권리장전의 반포 연도가 같다는 점에서 이 저서는 영국 명예혁명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고 혁명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저작임을 알 수 있다.



주요 핵심 내용으로 조국 교수가 말하는 폭정(계약 위반)에 대한 저항권과 예방권이 핵심이다.

상황과 조건을 불문하고 권위 없는 힘의 사용에 대한 진정한 치유책은 힘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권위 없이 힘을 사용하는 자는 항상 침략자로서 전쟁 상태를 도발하는 것.

인간은 폭정으로부터 벗어날 권리뿐만 아니라 그것을 예방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


폭정에 대한 저항과 예방권, 일명 '폭군방벌론'은 맹자의 「양혜왕 下」 8장을 참고하여 고찰하는 것도 좋다.

제선왕이 맹자에게 "신하가 군주를 시해(弑害)해도 되는가?" 묻자,

맹자는 답한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도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포악한 자(殘)라고 합니다.

이런 잔적(殘賊)을 일삼는 사람은 한 명의 필부(一夫)에 불과합니다. 저는 한 명의 필부인 주(紂)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또한 로크는 제5장 「소유권에 대하여(Of Property)」에서 노동가치설을 설파한다.

자연이 제공하고 남겨둔 상태로부터 무엇이든지 제거한 것은, 그의 노동이 섞여 있고 그 자신의 어떤 것이 결합된 것이며, 이로써 그것을 그의 소유로 만든다.


이 로크의 노동가치설은 이후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이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그 사상적 선행 단계가 된다.



마지막으로 반세기 후 삼권분립의 창시자로 알려진 몽테스키외보다 먼저,
로크는 국가 권력을 입법권과 집행권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누었다.

몽테스키외가 구분한 사법권은 로크의 관점에서는 집행권의 일부로 귀속시켰다는 점에서 로크의 사유가 몽테스키외 3권 분립의 초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4.19 혁명



마치는 글..

1642년부터 1649년 국왕 찰스 1세의 처형까지 영국은 왕당파와 의회파 간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의 시기였다.

찰스 1세가 처형되며 수립된 공화국인 잉글랜드 연방(Commonwealth of England)이 건국되었다.

이때 핵심 인물이었던 크롬웰이 1653년 호국경에 취임하여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국가 원수로 1658년까지 그 지위를 유지한다.


공화정은 군주정에 비해 이론적으로는 더 진보적이고 이상적인 제도일 수 있지만,
그 제도를 운영하는 리더가 자신의 신념이나 욕망에 매몰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히틀러와 그를 따르던 자들은 모두 합법적으로 행동했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크롬웰의 사례에서 더 나아가 지적할 부분은 그의 칼뱅식 도덕률의 강요다.

당시 영국은 청교도 외에도 성공회 교도, 가톨릭 신자, 그리고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무신자들로 그 구성이 다양했음에도 불구하고 크롬웰은 칼뱅이 제네바에서 행했던 엄격한 규율로 독재를 강화했다.

제도가 분명 중요하지만 이를 운영하는 사람 또한 중요하다.

우리의 24년 12월 3일 이후 6개월간의 혼돈 또한 제도보다는 선출된 한 개인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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