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교수가 엄선한 15권의 철학과 법학 고전을 중심으로 엮인 이 교양서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역사와 철학에 관심을 두거나 독서에 흥미를 느끼는 이라면 누구든 큰 어려움 없이 접근하도록 저자의 깊은 배려가 스며 있다.
몽테스키외가 역설했던 간결하고도 명징한 설명의 미덕을 이 책은 온전히 체현하고 있기에,
나의 포스팅과 별개로 직접 책을 펼쳐 정독하기를 강권한다.
그럼에도 나는 저자의 서사 방식과는 달리, 시대순으로 고찰하며 근현대 법과 사상에 그 맥락을 연결해 보고자 한다.
혹여 나의 부족한 사유가 온전한 깊이에 이르지 못하거나 본의 아닌 오독(誤讀)을 낳을까 염려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허나 책은 곧 저자와의 고요한 대화라 하지 않던가.
용기를 내어 저술 당시 적지 않은 고초를 겪었을 저자가 설파하고자 했던 깊은 의미에 나의 작은 견해를 조심스럽게 보태 본다.
참고로 원래 목차는 아래와 같다.

9장에서 소개하는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의 경우,
저자는 이를 시민불복종의 의미로 [월든]으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함께 구성한다.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함의는 책을 통해 직접 얻을 것을 우선 추천한다.
기원전 5세기 극작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신화의 저주받은 신탁으로 비극을 맞는 오이디푸스의 딸(안티고네)을 배경으로 한다.
내용은 생략한다.(간력한 줄거리로 읽어보길...)
저자는 안티고네가 sin과 crime 사이에서 sin을 선택하고 처형당하는 모습에서 시민불복종의 큰 사례를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여기에 더해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으로 시선을 옮겨 시민불복종의 원인을 좀 더 확장해 보고자 한다.
법은 만들어지지만 풍속은 계시된다.
후자는 좀 더 일반 정신에서 유래하고 전자는 좀 더 특수한 제도에서 유래한다.
풍속이나 생활양식을 바꾸고자 할 때에는 그것을 법에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中
안티고네를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크레온의 법(crime)은 특수한 제도에서 유래하여 만들어진 법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안티고네가 지키려 한 풍속(sin)은 매장 의례라는 오랜 풍습에서 비롯된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지평의 일부라 생각한다.
물론 사상의 추이에 따라 계속 변화하겠으나, 나는 현시점 몽테스키외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다음 플라톤의 저서 중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크리톤]의 주된 내용으로 "악법도 법"이라는 잘못된 구전에 대해 바로 잡고자 한다.
말 그대로 "악법은 고치라"는 결론이 될 것이다.
여기서 나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리스 철학의 핵심 인물들의 사상을 역사적으로 연결해 보고자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년 ~ 404년)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배한 직후가 배경이다.
당시 패배한 아테네에는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은 과두정 정권인 30인 참주 정권(기원전 404년 ~ 403년)이 들어서 민주정을 폐지하고 폭압적인 통치를 펼쳤다.
이때 소크라테스의 제자 중 한 명이 바로 이 30인 참주의 핵심 인물이었던 크리티아스(Critias)였다.
수많은 아테네 시민들의 학살과 압제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제자의 비호(?) 덕분인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 30인 참주 정권은 1년여 만에 종식되어 민주정이 기원전 403년에 수복된다.
참고로 이미 잘 알듯이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無知의 知)" 갈파는 타락한 민주정의 결과인 중우정치(衆愚政治)에 대한 비판이었고,
이는 곧 민주정에 대한 비판이자 군주정에 대한 갈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1년간 참주정으로 핍박받았던 아테네 시민들이 아무리 소크라테스가 강력한 로고스로 변론한다 한들,
그들의 가슴속에 잠겨 있던 일종의 르상티망(Ressentiment)을 자극하는 선동에 무너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 아니였을까?
단순히 정치 역사적으로 반복되던 희생양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앞뒤 역사적 배경을 배제하면 그저 무지한 시민과 곧은 심지의 소크라테스만 보일 수 있다.
이에 그의 제자들이 민주정을 옹호할 리 만무하다.
플라톤은 저서 [국가]에서 철인정치, 곧 군주정이 최고의 정치 제도라 말한다.
그리고 좀 더 실용적이라 불리우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카르타고의 혼합정을 꿈꾸었으나, 민주정의 중우정치화에 대한 비판적 맥락은 역시 비슷하다.

우리는 현재 민주정에서 살고 있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오랜 역사적 실험을 통해 얻은 최악이 아닌 제도라 믿고 있다.
그러나 루소 선생의 말("사물의 추이가 항상 평등을 무너뜨리는 경향이 있다.")처럼 역동적인 세상 속에서 어떠한 제도나 법률들은 늘 약자의 반대편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지금의 트럼프의 독선을 보면 민주정이란 것 역시 허망한 제도임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요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에서 보듯 정치 체제는 무한 루프이다.
현대로 보자면 사회주의, 입헌군주제, 사민주의, 민주주의, 전체주의, 군주제 등으로의 변천 자체가 위계적인 집단 간 긴장과 투쟁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법은 항상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하나의 제도에 경도되는 것은 지양해야 마땅하다.

#조국, #법고전 산책, #안티고네,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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