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부유한 가문의 여성과 결혼했으며, 백부로부터 고등법관의 자리까지 상속받은 전형적인 caviar left' 또는 오늘날의 '강남좌파'라 불릴 만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는 법관 출신 특유의 신중함과 치밀함을 겸비하면서도, 인간과 사회를 향한 깊은 통찰과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법의 정신]은 권력의 현실적 속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권력을 오직 권력으로 견제해야 한다는 구조적 견제 방식을 제안한다.
이는 존 로크가 제시한 입법권과 집행권의 이권분립에서 사법권을 분리하여 독립적인 삼권분립을 주장하는 핵심이 되었다.
몽테스키외의 이 주장은 이후 대부분의 근대 국가에서 정치 제도의 근간으로 수용되며 보편적 자유와 권리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더 나아가 몽테스키외의 접근 방식은 사회적, 지리적, 문화적 요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법과 제도를 체계적이고 실증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는 콩트보다 앞서 사회학적 사고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일례로 그는 기후별 특징을 들어 조선의 남부와 북부 지역 주민들의 강인함과 용맹함을 비교하는 등,
환경이 인간의 본성과 제도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적으로 탐구했다.
몽테스키외는 다음과 같이 권력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무지의 시대에 사람들은 가장 악독한 행위에도 아무런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깨달음의 시대에는 가장 선량한 행위를 하면서도 불안에 떤다.
...
권력을 가진 자는 모두 그것을 함부로 쓰기 마련이다. 이점을 지금까지의 경험이 알려주는 바이다.
사람이 권력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본질에 따라 권력이 권력을 저지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통찰은 법 제정의 방법론에 대한 깊은 숙고로 이어진다.
그는 법이 입법자의 의도에 어긋나게 해석될 여지가 없어야 하며 문체가 간결해야 하고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관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풍토에 따라 정신적 특질과 마음의 정념이 다르므로 법 또한 이러한 성격의 차이에 상대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지역적 특수성과 보편적 원리 사이의 균형을 모색했다.
특히 공화국의 덕성과 관련하여, 인민이 군주이자 동시에 신민으로서 투표를 통해 주권을 행사함을 역설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공화국에 있어서 덕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국애,
즉 평등에 대한 사랑이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동등한 인간에게 복종하고 동등한 인간을 지배하도록 하는 데 있다. 자연 상태에서는 인간은 분명히 평등한 존재로 태어난다.
사회는 평등을 잃게 만든다. 그리고 인간은 법에 따라서만 다시 평등해진다.
이 대목에서 느껴지는 계몽주의자 몽테스키외의 따스한 가슴과 인류애는 후대 많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음을 짐작게 한다.
그의 이러한 관점은 레비나스의 시선과도 마주한다
타자의 근원적 타자성은 정확히 나의 사고를 통해 그를 총체화하거나 지배하려는 나의 능력을 좌절시키는 것이다 -레비나스
타인의 존재와 가치를 인식하고 존중하려는 윤리적 태도의 선구적 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지식은 사람을 온화하게 만들고 이성은 사람을 인류애로 이끈다. 인류애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편견뿐이다
타자에 대한 성찰과 포용이 결여된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깨우는 경구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는 공화국의 이상만을 논하지 않았다.
공화국의 불행이 오히려
"당쟁이 없어졌을 때" 찾아온다고 경고한다.
인민이 무관심해지고 물질적 욕망에만 집착하게 되면 국가의 일에 대한 애착을 잃고 통치와 관련한 문제에 무관심해지며 그저 대가만을 기다린다는 그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이는 후대 [페더럴리스트] 의 유명한 경구의 태제가 된다.
파벌의 원인은 제거될 수 없고 오직 파벌의 영향을 조정하는 방법에 의해서 치료할 수밖에 없다
권력의 다원성과 견제의 중요성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경구가 아닐 수 없다.
현실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돈, 대학, 직장, 아파트 등 물질적 성공을 향한 열망이 지배적인 사회적 프레임에 압도되어 살아가는 모습들을 목도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의 시간은 집단적 논리가 계획하며,
온라인의 삶과 표면적 자극,
쓸데없는 잡담이 그것을 평가하고 차지합니다.
- [모든 삶은 빛난다] 안드레아 콜라메디치, 마우라 간치타노
라는 책속 구절처럼
현대 사회는 피상적 욕망과 무관심 속에 갇혀 관계 속 거세된 덕성과
쇼츠에 열광하며 자신의 뇌를 스스로 갉아먹는 시기로 도래했다.
작금의 시기를 몽테스키외는 어떻게 비판했을까..
#조국 #법고전산책 #몽테스키외 #CaviarLeft #법의정신 #계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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