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 하늘로 올라오는 서광의 산란이다.
12월 추위에도 매섭지 않게 따사롭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듣는 말들이다.
"사는게 다 그렇지 뭐"
"나하나 바꾼다고 뭐가 되겠어?"
"살아 남는 놈이 강한거야"
"나만 아니면 되"
"집값? 올라야지. 젊은이들이 집장만이 힘들다고? 우리 아이는 내 아파트 물려주면되"
"공부 안했으니까 지잡대 갓겠지"
"모난 돌이 정 맞는거야. 적당히 순응하고 살아야 편해"
전형적인 능력주의(Meristocracy) 사회에 침윤된 우리들의 자화상이며 대상지향적 예언(편견)의 위엄에 포획된 노예상태를 보여준다.
모든 국민이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을 누리고 90년대생이후 출산한 국민의 절반이상이 대학교육을 받는다.
그래서,,,?
출발과 과정 그리고 결과가 공정할까?
불평 불만은 그저 루저들의 게으름과 능력부족의 결과에 대한 비열한 반항 정도로 치부된다.
전후 고도 성장기에 맹아된 위계적 "구별짓기"가 이젠 사회 모든 층위에서 "밀어내기"로 고도화 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30대 남성들의 우경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대부분의 빛은 직진하다.
다만 장애물을 만나면 빛도 다양하게 굴절한다.
그 중 산란 만큼은 일정한 패턴없이 비결맞게(무질서하게) 빛을 분산(굴절)한다.
하여 부드럽고 따스하다.
이 사회는 빛의 직진으로 모든것을 규정하고
산란의 빛은 무화시킨 채 패턴화된 굴절로 약자를 대변한다고 선동한다.
그럼에도 소리 큰 위정자들보다 함께 공감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비록 그 외침이 크지 않지만 다가섰을 때 잔향 만큼은 진하게 느낄 수 있다.
21세기 꿈꾸는 부엔 비비르 (Buen Vivir) 역시 변화와 저항 속 개화될 것이라 본다.
해가 가장 중천인 정오보다 오후2시가 더 따스하 듯 개화와 만개의 과정은 녹녹치 않을 것이다.
개인간의 실체적 차이를 포용을 넘어 에고의 기반으로,
까르떼시앙 곱(Cartesian Product)의 최적 유발 환경인 리좀적으로 사고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경중없는 앙가주망(engagement)으로 서열화된 21세기 앙시앵 레짐이 종결되기를 희망한다.

Silence gives consent
침묵은 동의를 의미한다.
- 올리버 골드스미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권리를 위한 투쟁] 예링
산란의 시작이 "기본소득"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기본소득, #산란, #리좀적, #앙가주망, #구별짓기, #밀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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