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리의 사피엔스나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읽은 독자의 경우
이 책의 첫 챕터는 술술 넘어가는 만화책에 가깝다.

하지만 멈칫하게 되는 순간은 역시 언어학자의 날카로운 시선이 개입할 때다.
저자는 인지혁명의 최대 수혜를 허구적 단어의 탄생으로 보며,
이를 '내일'이라는 단어로 규정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성을 공포스러워한다.
사피엔스는 그 거대한 공포를 "내일"이라는 단 두 음절 속에 가두고 통제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동시에, 상상 속 이미지들을 현실로 체현해내는 무한한 능력이 이 단어 하나에 함의되어 있다.
연약한 사냥감에 불과했던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된 원동력은 바로 이 "내일"을 사고하는 능력이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다른 영장류(오스트랄로피테쿠스등)와의 차별점으로 꼽은 '유형성숙(幼形成熟)'이다.
호미니드(직립보행)의 출현이 시간을 두고 도구의 진화를 불렀다면,
성체가 되어서도 어린 시절의 특징을 남겨두는 유형성숙은 두뇌 질량과 지능의 발달을 가져왔다.
덜 자란 채로 태어나 더 오래 배우는 유아화 경향이 역설적으로 인류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선물한 것이다.
현존하는 인류의 역동적 진화를 만든 것은 강인한 신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내일)을 꿈꾸는 정신(뇌)의 기묘한 조화
그리고 언어를 매개로 하는 소통이 아니었을까?
생물학적 나약함을 무한한 학습 능력으로 승화시키고,
"내일"이라는 허구를 발명해 낸 사피엔스의 여정이야말로,
자신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초월해 나가는 사르트르가 설파한 실존의 여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 유형 성숙(幼形成熟, Neoteny)
: 동물이 나이가 들어 성체가 되어도 어릴 적의 형태나 성질을 유지한 채 번식 능력을 갖추게 되는 생물학적 현상.

#인간언어학, #호모사피엔스, #내일, #유형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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