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은 청년 헤겔이 예나 시기 저작인 [실재철학]에서 데카르트적 고립된 주체 중심 철학을 넘어 홉스와 마키아밸리의 투쟁적인 계약관계와 피히테의 인정이론을 흡수,
타자와의 상호직관과 변증법적 즉자 지양을 통한 투쟁으로 대자적 주체가 형성된다는 보다 적극적이며 호전적인 "상호 주관성" 개념을 설파하는 장이다.
물론 이후 저서인 [정신현상학]으로 넘어가며 정초되었던 인정투쟁을 시민사회 울타리내의 권리 관계로 제한하고
사회화(절대정신)의 마지막 단계인 "국가"에서 희미해진 인정에 대한 아쉬움과 플라톤의 [국가]와 비견되는 절대군주의 미화에 대한 절망감이 녹아있는 장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국가" 단계까지의 과정에서 희미해진 건 "인정" 보다는 주체가 가진 각각의 "개별성"과 군주와 시민이라는 위계적 구조의 은폐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대표성(Representation)의 약점을 파고드는 포퓰리즘이나 카오스에 대한 역사적 배경(프랑스 혁명 인터레그넘 시기의 공포정치)과도 무관하지 않다고는 생각한다.
"전 인류가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라도, 그 한 사람의 생각은 존중되어야 하며 억압해서는 안 된다" - [자유론] 존 슈어트 밀

문구들을 함께 보자
정신 발전의 종착점은....
정신이 자신을 완전히 분화시키고,
이런 점에서 자신에 대한 "절대적" 지식에 이르게 되는 종착점이다.
자신을 다양한 모습으로 외화(내재화) 시켜 외부 세계의 타자들과 상호직관하며 지양(부정하고 반성하는 변증과정)할때
비로소 절대정신(해탈?)을 가질 수 있다.
의지하는 자,
즉 자신을 정립하려는 자는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만들려고 한다."
따라서 헤겔은 의지의 형성과정을 자신의 의도를 실천적, 대상적으로 실현하려는 결단에 따른 자기경험의 형태들로 구성한다.
또한 여기서 단계 구분은 권리 인격체가 갖는 자기의식의 완전성을 미리 가정함으로 얻어진 것으로,,,
노동 행위의 결과물은 즉 제작물 속에서 주체는 비로소 자신이 현실을 범주적으로 구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의 내용 자체가 자신을 통해서 존재함을 경험한다.
도구적 자기경험(스스로를 사물화 혹은 대상화하는 경험을 통해)과 노동을 통한 인간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의식에 도달(정립적 자기관계)한다는 의미가 된다.
도구적 자기경험은 자신의 개별성을 사물화로 보편화된 강제 속에서 수동적 실천으로 제약된 사회화 과정 속 자신의 경험이란 말이 되고,
결론적으로 노동은 자신을 사물로 만드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물론 헤겔의 실재철학이나 정신현상학 모두 변증법적으로 해석해 보면
단순히 지양 그 자체의 부정적 의미라기 보단 긍정로의 전환을 의미하긴 한다.
또한 노동이라는 미시적 표현보다는 즉자적 자연 상태의 변형이라는 매개로 진보하는 대자적 존재'로 해석하면 사회 활동 전반으로 확대 해석이 가능하고,
헤겔이 지속적으로 갈파중인 인륜성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셀프 대상화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 다양한 철학자들의 의견을 첨하자면
샤르트르, 라캉 그리고 레비나스는 아래와 같은 과정을 통한 초인(성찰)으로 진보한다고 보았다.
샤르트르의 경우 초월적 선망에 대한 "자기기만"의 방어기제와 반성을 지속성을 통한 (타자는 지옥이다),
라캉은 자신을 보여지는 대상으로, 주체를 타자로 설정하고 타자의 욕망을 통한 (인간은 타자의 묙망을 욕망한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무한한 다양성에 직면하며 나 자신의 주체성을 재규정하는 과정을 통해 (얼굴은 무한의 나타남이다),
마지막으로 포이에르 바흐는 인간이 지닌 무한한 사랑, 지혜, 의지, 능력 등을 훌쩍 넘어선 초월적 특성들을 투사한 결과가 신(神) 이며,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초월적 자아에 대한 굴종 상태를 타파하고 인간들 사이의 상호 주관적 관계의 정립을 통한 성찰을 설파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위 철학자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대상, 도구로 만들어 자신을 최대한 정립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진보한다는 것이다.

분명 공감하지만 이 또한 21세기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타자의 시선이 그가 속한 다양한 군집 중 어느 군집의 보편성인지 아니면 개별적 성향의 시선인지,
시공간별로 변화하는 무한한 페르소나(리비나스의 무한의 나타남에 격하게 공감한다.)에 비춰진 타자의 시선은 늘 흐릿하기에 불안하고 무상하다.
#도구적, #사물화, #도구화, #자기경험, #헤겔, #레비나스, #얼굴은 무한의 나타남이다, #상호직관, #상호주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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