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거울신경세포 라는게 있어 다소 차이는 있겠으나 분명 이타심이 존재한다.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과도 연결되는 것은 물론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사람에게 두가지 시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피사체물이고
또 다른 하나는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외화(셀프 사물화)시켜 나를 바라보는 시선.
(스피노자 형님의 신의 정의와 흡사하다)

그래서 사람마다 관계의 수 만큼이나 페르소나의 수가 어마무시 한게 당연하다.
시공간에 따라 타자의 시선속 나의 모습이 흡족(인정)하다면 강화를,
멸시(소외)라면 기만이나 쟁투로 나의 가면을 고처쓰는 반복의 삶이 아닐까?
여기서 자기기만은 기투의 과정 속 양가적 속성으로 부정과 긍정을 동시에 만족한다.
모든 타자에게 완벽한 내가 될 수 없으므로 기투의 과정 속 기만은 회피이자 진보의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 생각해 보면 관계에서 자의던 타의던 소외되어 역지사지가 부족한 것은 외화된 시력이 낮은 것일 뿐 개선이 가능하다.
물론 외화시킨 시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를 소시오패스라 부르기도 하니 많이 부족하면 병리적으로 접근해야 하나보다.
이런 외화된 시력보강 전용 루테인이 있다
바로 독서라고 들었다. ^^
물론 주관적이므로 다양한 루테인이 존재하겟지..
책은 이 가을 부족해진 세로토닌을 채워넣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우리의 실존적 삶은 타자와의 관계 속 소외와 기만의 긴장 속 응축된 페르소나들의 대면이다
#실존, #관계, #페르소나, #기만, #루테인, #쟁투, 사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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