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批判) 은
검토 및 숙고하고 결정과 행위를 한다는 의미이며
영어로 criticism 는 그리스어 kritikos(판단, 검토)에서 유래한다.
그 의미는 비슷하며 맥락상으로 양가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글 혹은 말의 맥락속에서 긍정 혹은 부정을 구분할 수 있다.
비판의 긍정적인 부분으로는 합리적인 사고의 초석이다.
다양한 사회적 인간들의 이익관계에서 분열을 조장하는 인위적 도그마에 대한 저항과
반복적으로 고도화되는 확증편향 과정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가 된다.
무엇보다 개인들의 보다 깊은 사고의 유도로 사회 전반에 유익한 진보적 가치와 문명의 발전을 가저올 수 있다.
긍정적 비판의 결여가 심화되는 경우가 바로 2024년 12월3일 발생한 계엄령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선 정신과 전문의들의 계엄 수괴에 대한 다양한 병리학적 접근을 볼 수 있다.
이를 근거로 보면 계엄의 헤더위에 shadow power 가 존재함을 유추할 수 있다.
이때 헤더를 정복한 인위적 도그마는 적극적 수동이고
확증편형으로의 확대는 협소한 선택지로의 강요된 능동이다.
밤잠을 설치며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불확실성의 공포는
사회 전체에 가늠하기 힘든 수준의 리스크를 양산하고 있다.
이에 부정적 비판은 맥락상 바로 알아차릴 수 있으며
긍정적 비판과의 차이는 최종 예상 결과만 비 낙관적(부정적)일 뿐 그 과정과 발전적 취지는 동일해야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오만한 레토릭 그 이상일 수 없고 비판과는 확실히 구분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critical cheer 에 대해서 고민해 볼만하다.
얼핏보면 비판적 응원이며 긍정적 비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중용을 함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사용될 수 있으나
그러한 의미에서는 cheer 대신 support로 표현하는게 적당하다.
cheer 는 실질적 도움이 포함되지 않는 의미의 지지와 응원이고(평론가라 말하고 아가리 파이터 쓴다)
support 는 반대로 실질적 도움을 포함하는 의미의 지지와 응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말로는 구분할 단어가 마땅치 않다.
critical cheer 는 교묘하게 자신을 숨기며 아가리만으로 공동체의 분열을 조장하는데
취지와 과정을 무시한채 일부 단락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이는 전형적인 X-맨에 의한 Divide and rule 에 해당하며
사유가 취약한 사람들에게 있어 비판의 가장 부정적 측면이다.
분열은 혐오를 부르고 그 혐오는 지배로
지배는 자유의 통제로 그 마지막은 폭력으로 귀결되며
무한루프로 강화된다는 것은 오랜 역사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123 계엄으로 당선된 그놈(일당)도 Divide and rule 을 교과서처럼 이용했다.
성별간의 분열
인종/국적간의 분열
세대간의 분열
계층간의 분열
철저하게 계산된 그들의 술책에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사유뿐이다.
합리적 사고는 공자부터 데카르트, 칸트 그리고 푸코까지... 동서양 고대부터 현대까지
편향되지 않는 지식을 바탕으로하는 의심과 사유라고 말한다.
논어에 "지식없는 사람은 공허하다" 말도 있지 않은가.
현대 사회는 확증편향마저 귀차니즘으로 매우 빈약하다.
인간은 변연계의 협소한 예상만으로 자신의 이익을 산출하고 이에 종속된다.
인지부조화는 미래의 불확실성만큼 인간에게는 고통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이겨내야한다.
이제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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