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고도성장 속 20세기를 지나 21세기부터 안정화된 저성장 기조에서 살아가고 있다.
20세기 사회 현상 중 하나는 전후 세대들의 강제적 학력 부족과 이후 자녀들에 대한 열광적인 보상 학구열이다.
학력의 차이는 전반적으로 정보의 차이와 사유의 차이를 불러왔으며
배금주의와 신사대주의 그리고 인구배당효과등은 세대간 분열의 단초를 제공했다.
전후세대들에게 20세기는 전장이었고 절박함 그 자체였다.
그들에게 존엄은 사치의 영역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그런 그들에게 안정기의 21세기가 전해준 건 낡은 꼰대 이미지와 무거운짐 그리고 빠른 사회변화에 뒤처지는 세대로의 사회적 시선이다.
이러한 기조가 전후 빠른 복구에 중심에 있던 세대들에게 정체성 혼란이 유발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여기서 찾은 돌파구가 지배자들의 탐욕에 기반한 신사대주의와 융합한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제왕에 대한 갈망이다.
고도성장 속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향수를 공유하며 인정욕구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로 각인된다.
이는 미세한 선동에도 전두엽의 활성화를 저해하고 이로인한 해리가 자발적 노예화를 유발한다.
양가적인 표현으로 "인정받기 위한 복종" 정도가 아닐까 싶다.
광화문에서 태극기와 성조기 심지어 이스라엘기가 펄럭인다.
이는 동시대를 함께한 박정희의 향수를 부르고 곧바로 자질도 능력도 없는 그네의 탄핵 그리고 작금의 윤뚱 탄핵을 불러왔다.
그럼에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아니 물러설 수 없다.
그들에게 이제 생존은 한끼 식사가 아니라 정체성으로 새로이 정초되었고 자기기만(bad faith)으로 완성되었다.
역사적으로 변화에는 단계가 있다.
변화의 시작은 늘 역동적이고 안정화의 시기에는 깊은 사고(주지주의는 경계하되)를 바탕으로 한 이데올로기가 시스템을 유지하기 마련이다.
전후세대들의 역동적 시대가 저물었음을 인지 유도하고 자녀 세대들도 그들의 존엄을 인정하며 새로운 리더로써 책임을 다해야 한다.
프랑스혁명 이후 헨리18세의 복귀가 그러했고
한번 쫓겨난 칼뱅의 복귀를 보라, 박정희의 망령과 너무도 흡사하다.
이 망령은 앞으로 최소 20년간 염산을 뿌려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인터레그넘 시기의 카오스는 민중의 사유의 무게추를 안정과 타협으로 기울인다.
난세를 타개할 묘수도 중요하지만 세대간의 공존도 함께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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