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끄적끄적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by 홍보살 2026. 6. 15.

인간은 절대적 유한성과 사회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이다.
에피쿠로스가 말했듯이,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 죽음은 우리에게 닿지 않고,
죽음이 우리에게 왔을 때는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을 떠올리면, 절망은 대부분 외부로부터 찾아온다.

시간이 흘러 쌓아 올린 집이 사기로 넘어가거나
부모님의 죽음,
늘 곁에 있던 소중한 친구의 죽음
같은 현실 속에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현자들의 탁견들은 이러한 절망을 긍정하라고 설파한다.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실존주의의 선구자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절망을 무한한 긍정으로 표현한다.

"절망은 인간만의 특권이자 동시에 비참함이다.
이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절대적인 파멸이며,
오히려 이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증거이다.
정신적 자각을 얻은 실존적 인간에게 절망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또 다른 실존주의 철학자 야스퍼스는 절망이 드러나는 한계상황을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통과의 사건이라 말했다.

이를 풀어보면,
한계상황(절망)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면서도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 앞에 무너지는 스스로를 응시하면서 상황을 통과해야 하는 실존의 시작점에 서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핵심은 한계상황을 수용하며 회피하지 않고 "통과"하는 데 있다.

실존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샤르트르도 앞선 키르케고르나 야스퍼스와 마찬가지로,
유한성 앞에서 절망을 경험하지 않고서 실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다만 역설적으로, 샤르트르는 자기기만을 현실의 나약함을 회피하는 즉자적 태도이자 극복의 대상으로 보면서도,
자기기만을 절망 속 최소한의 방어기제이자 도약의 발판이자 자기 응시를 위한 변곡점으로 제시한다.

현자들은 말한다.

유한성 극복의 갈망이 만든 불사의 신(神)에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 일의성을 지닌 고정된 실체가 없는 공(空)으로서 연기(緣起)를 마주하는 눈으로 자신을 투영하라고.

대승불교의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말처럼,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듯 번뇌(절망)가 곧 지혜임을 깨닫는 것이다.

시공간을 무화시킨 이런 현자들의 깊은 사유는 우리에게 말한다.

절망, 번뇌, 한계상황의 휘발적 수용이 아닌 심층의 사유로 체화할때
비로소 우리는 실존적 자유로 나아가 공(空)을 체현하는 대자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번뇌즉보리, #煩惱卽菩提, #연기, #緣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