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공화국으로 변해버린 작금의 대한민국을
파레르곤(Parergon)의 시선으로 살펴보자.

먼저 어원을 따라가 보자.
파레르곤은 "para"(곁에, 옆에)와 "ergon(일, 행위, 작업, 본질)이 만나 탄생한 단어다.
본질적 행위나 작품의 중심에 속하지 않고
그 주변이나 가장자리 혹은 바깥에 덧붙여진 보조적 존재를 가리킨다.
칸트는 파레르곤을 "에르곤",
즉 그림 그 자체의 주변부로 액자와 같은 보조 역할에 한정했다.
엄격한 칸트의 사유는, 심지어 좋은 액자조차도 때로는 작품의 본질을 훼손하는 나쁜 파레르곤일 수 있다고 설파했다.
금빛으로 씌운 금박 액자가 바로 그런 예다.
그런데 여기서 그림(에르곤)을 커피, 빵(에르곤)으로,
액자(파레르곤)를 카페라는 공간으로 치환해 보자.
과거엔 빵집과 커피 맛이 판매 장소의 영향에서 크게 자유로웠다.
그만큼 맛(에르곤) 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맛은 보편적으로 상향 평준화되었고
에르곤과 페레르곤이 마치 주객이 전도된 양상이다.
취향은 각자 다르지만, 나는 유명 커피 브랜드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인스턴트 원두에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이런 현실에서 브런치 카페, 베이커리, 다이닝 카페들은 이미 맛을 넘어
네오필리아(Neophilia)ⓐ라 불리는 새로움에 대한 욕구를 상업적으로 활용한다.
그 결과 거대한 규모와 화려한 인테리어, 익스테리어에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며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특이한 점은 그 크기와 높이가 점점 성전을 연상시키듯 웅장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누구도 흠결을 입에 담을 수 없는 신성한 공간처럼,
이는 상향식 시선을 강요하며 추앙의 대상이 된다.
오늘날 커피(에르곤)이 차지하는 비중은 3할도 채 되지 않는다.
대신 공간(파레르곤)의 신선함과 웅대함 그리고 실용성(예: 카공족)이 포션의 7할을 넘나든다.
이런 결과를 보면 칸트가 말한 파레르곤의 위계적 경계는 적어도 지금 우리나라 커피 문화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반면 데리다의 차연(Différance)ⓑ과 베르그송의 엘랑 비탈(Élan vital)ⓒ의 관점에서는
파레르곤이라는 개념이 이 시대를 무리 없이 설명된다.
데리다가 말한 차연의 시선에서 보면,
본질인 에르곤(커피)과 주변부인 파레르곤(카페 공간)의 경계는 처음부터 유동적이며 고정된 본질이 아니다.
따라서 그 경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미해지고 무너져 간다.
오늘날 우리는 단지 커피나 빵의 맛을 위해 카페에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공간이 주는 감성에 이끌려 그곳에 머문다.
커피와 빵은 그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장권, 부수적인 존재로 전락했다.
물론 그 반대로의 변화도 언제든 가능하다.
이 끝없는 유동성은 베르그송이 말한 엘랑 비탈이 지닌 본유적 속성에서 비롯했을지 모른다.
이제 카페는 공간과 감성, 그리고 SNS라는 과시적 소비의 장으로서
하나의 거대한 액자(파레르곤)처럼 기능한다.
에르곤과 파레르곤의 역할과 본질은 함께 유동하며,
시공간의 변화무쌍함은 고정된 도식을 거부하고 모든 시선을 포용한다.
6월이다 곧 다가올 비가 우리의 뽀송한 손등을 촉촉이 적실 것이다.
오늘 나의 확신 가득한 웅변이 새벽의 빗물 속에 씻겨 내려가는 것이 또한 이상하지 않다.
ⓐ 네오필리아(Neophilia)
그리스어 'Neo(새로운)'와 'Philia(사랑/애호)'가 결합된 단어.
새로운 것, 새로운 환경, 또는 새로운 도전을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선호하는 성향
비슷한 말로 얼리어답터, 반대말로 네오포비아(Neophobia)가 있다.
ⓑ 차연(Différance)
데리다가 제시한 개념으로, 차이(Difference)에 의해 생성되고, 동시에 본질적 의미는 끊임없이 연기(Deferral)되어
절대 고정된 존재로 머무르지 않음을 뜻한다.
즉, 어떤 것도 절대적인 본질로 규정할 수 없으며
주변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변주된다.
ⓒ 엘랑 비탈(Élan vital)
베르그송이 말한 생명의 근원적 힘으로,
기계적이고 규칙적인 운동이 아닌, 스스로 변화하고
예측 불가능한 창조적 에너지이다.

#파레르곤, #Parergon, #엘랑비탈, #네오필리아, #Neophi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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