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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탈이해 그리고 포틀라치

by 홍보살 2026. 6. 3.

사적 이익을 넘어 '사이(Inter)'의 '존재(Esse)'를 회복하는 연대인간을 오직 이기적인 경제적(산술적) 동물로만 바라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마르셀 모스는 그의 저서 [증여론]을 통해 탈이해적 관점을 갈파한다.

"최근에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 묘사하기 시작한 곳은 바로 서양사회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전적으로 경제적 동물일 수만은 없다."


이 현자와의 대화의 현현으로 포틀라치 전통과 '이해(Interest)'의 본래 어원을 찾아가며,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연대와 공감의 가치를 나의 시선에서 재현해보고자 한다.

포틀라치


북미 해안가 원주민들의 재분배 및 증여 의식인 '포틀라치(Potlatch)'는 현대인의 상식을 뒤흔든다.

이곳에서는 재산을 얼마나 쌓느냐가 아니라, 타인에게 얼마나 많이 나누고 파괴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권위가 결정된다.

부족의 리더는 수년간 모은 귀중품을 아낌없이 선물하는 '증여'를 하거나, 심지어 재산을 불태우고 바다에 던지는 '과시'를 감행한다.

산업혁명 이후 이해타산적 관념에 경도된 백인 점령자들의 눈에는 참으로 어이없는 낭비로 보였을 것이고,
결국 이 전통은 법으로 금지당한다.

물론 포틀라치가 전적으로 순수한 자선은 아니다.
불교의 '보시(布施)'가 내 안의 집착을 비우는 순수한 무형의 수행이라는 점에서 포틀라치와는 준별된다.

포틀라치는 선물 주기, 받기, 답례라는 '삼중의 의무'를 강제한다.

받은 만큼 더 크게 보답하지 못하면 상대 추장의 권위 아래 복속해야 하는 원리다. 그럼에도 목적합리적 시선에서 보면 두 행위의 결과는 비슷하다.

포틀라치는 긍정적 결과로는 부의 독점을 막아 불평등을 해소하는 '재분배 장치'였으며,
피를 흘리는 전쟁 대신 "누가 더 많이 베푸는가"를 겨루며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지혜였다.

우리는 여기서 '이해(利害)'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질문해야 한다.
한자로는 단순히 '이익과 손해(득실)'로 풀이되지만,
영어 'Interest'의 라틴어 어원을 뜯어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다.

이는 '사이에(Inter)'와 '존재하다(Esse)'가 결합한 말로, 본래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의미했다.

선물을 주고받으며 서로 기꺼이 빚을 지고 고마움을 느끼는 포틀라치 의식이야말로 이 어원적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로 보인다.

원주민들에게 교환이란 화폐의 무한 증식 욕망을 채우는 기계적이고 산술적인 '목적합리적 이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의 '사이에(Inter)' 서로의 '존재(Esse)'를 스며들게 하는 '가치합리적 이성'의 실천이었다.

하여 포틀라치 의식의 3중의 의무(원칙)는 인간의 본유적 불완전성과 두려움에 대한 수용이자 긍정의 보시(布施)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사적인 손익 계산에서 벗어난 탈이해적 관점, 그리고 그 안에서 비로소 얻게 되는 무형의 자산이야말로
인간을 연대안에서 부요하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탈이해적 관점



#포틀라치, #탈이해, #가치합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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