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넷플릭스로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을 정주행했다.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에서 안경 쓴 산부인과 1년 차 레지던트 김사비를 보면 아주 흥미롭다.
조금은 현실에서 소외될 법 하지만
매우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엘리트주의자로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성장기를 보는 재미도 솔솔한 이유가 혹시 클리셰? ㅋ
거의 마지막 회차에 이르러 김사비의 수술방 참관 장면이 나온다.
12월 31일에 시작된 수술이 1월 1일이 되어 마치던 시점에, 수술 집도의 교수가 제안한다.
"너무 오랜만이라 못 알아볼 뻔했네요. 1년 만에 만나는 거라"
라고 환자에게 가볍게 말을 건네주면 어떻겠냐는 제안이다.
하지만 수술방 분위기는 아재 개그 정도로 느낀 후배들의 시선이 교차하며 순식간 썰렁~
이후 수술 환자와 입원실에서 조우한 집도의 교수와 전공의 1명, 그리고 김사비.
집도의 교수가 환자에게 수술 후 경과 보고를 하고 나가려는데, 김사비가 누락된 말이 있다고
세 차례에 걸쳐 막아선다.
그때 환자에게 교수가 했던 당시 썰렁했더 그 제안,
하지만 바뀐 시점에선 가슴으로 교감할 수 있는 그 멘트를 김사비가 그대로 재현한다.
순간 그 따스함에 아니마가 분출하여 뭉클했다.
이는 주지주의에서 구성주의(Constructivism)로의 철학적 수용과 성장을 보여주는 사례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합당성은 언제나 합리성을 압도한다.
: John Rawls(존 롤스)"
합리적(合理 : The Rational) 이라는 것은 개인이 자신의 목적과 이익을 추구하고 이를 극대화하려는 수단-목적적, 계산적 판단과 밀접하며 개인의 이성에 뿌리를 둔다.
합당함(合當 : The Reasonable)은 합리적이긴 하나 상황(이유)에 맞게 탄력적이며, 공동의 손익에 대한 자유롭고 수평적이며 호혜적인 판단과 밀접하다.
가다머의 "지평의 융합(Horizontverschmelzung)"이란 경구를 조금 변주해 보자.
해석(판단)은 다양한 역사/문화적 지평과 연속된 관계 속에서 상호 주름 속 스며듦의 반복으로
생성되고 변주되는 것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원적이며 유동적이다.
합리성의 근간에 연민이 있다면, 유연하게 확장된 최종 형태가 바로 합당함이 아닐까?”
단군 할아버지 이전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현재의 합리성은 영원할 수 없고 시공간 위 온기만 유효하다.
당신의 행동은 합당한가?

#합당 #합리 #김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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