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이 말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은 광막한 우주의 어둠 속에서 드러난,
생명이 숨 쉬는 작고 허약한 지구에 대한 관조이다.
세이건은 지금 내가 호흡하는 세상이며,
그 안에서 무수한 사건과 변화 가운데 내가 온전히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마치 드넓은 바닷가에 흩어진 수없이 많은 모래알 중 한 톨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는 또 한낯 모래알 하나에 가치를 부여하며 사는 것이 바로 인간의 고귀한 운명이자 명징한 한계라고 말한다.
불확실성은 우리를 거세게 흔들고,
그 앞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통제욕구라는 방어기제의 성벽을 만든다.
진시황이 영원을 갈망하며 불멸의 비약을 찾았고,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하늘을 향해 완강히 빛을 발하는 것도 다름 아닌 불확실함에 맞서는 내제적 갈등이다.
이 필사(必死)의 두려움은 여전히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이에 나는 욕구를 넘어 욕망을 지속적으로 수취의 대상으로 상정하며 스스로 소외되었고,
흑담즙으로 흔건하다.
그럼에도 나는 내인생의 클리셰에 완강히 저항한다.
현자들과의 대화가 내게 주는 희망인 이유이기도다.
오늘도 2000년이 넘는 시간을 관통하는 두 철학자의 교차점에 나의 시선이 모아진다.
단순히 모든 상황에 대한 회피를 말하는게 아닌 근원적 두려움에 대한 어쩌면 적극적인 대응일 수도 있다.
세이건의 시선 속 푸른점도
분노 없는 대화만으로도 저항할 수 있다는 마르틴 부버의 말도
모두가 관조와 수용의 저항이다.

"행복의 길은 단 하나,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결코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 에픽테토스

"한계상황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통과의 사건이다."
- 야스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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