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헤라클레이토스를 접하게 된것은 시냅스 생성이 안되는 서양 철학을 연결해 보고자 보았던 "틸리 서양철학사"였다.
그저 가볍게 알고 있던(불이 세상이고 강물로 유명한 경구정도로 소비) 차에 "헤라클레이토스의 망치(로저 본 외흐)" 라는 책을 보게되었고 그의 또다른 매력을 알게되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BC 6세기전후로 활동한 그리스 철학자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다.
대체로 허무주의 성향의 불가지론자로 보이며
만물을 불(투쟁과 변화)에 비유했고 가장 유명한 경구로는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사실상 현재라는 것은 없고 과거만 존재한다는 것) 이고
"원에서 끝은 곧 시작이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은 하나이며 같다'
등의 시간의 연속성과 회기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많아 보인다.
이 사상들은 부따(석가모니 : 왕족이며 카르마통한 열반을 목표로하니 헤라클레이토스 보다는 긍정적이다.)의 윤회설과 이후 니체의 영원회귀와 다다르고 있으며
플라톤의 이데아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좀더 확장하면 동시기가 실크로드의 시작시점이기도 하니 도가의 無爲自然(무위자연)과도 맥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름은 우리입에 딱 붙지 않는다.
나같은 경우 그리스 여신 헤라(혹은 화장품 브랜드 헤라)와 여성의 음핵의 영문 이름의 합성어로 기억하니 한방에 해마로 저장된 것 같다.
여튼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 중 탈레스(만물이 물에 정초한다)와 함께 가장 영향력이 큰 고대 철학자이며
현대에 와서도 양자역학과 타임 블로킹(Time Blocking)등의 조류로 인해 더 주목받고 있다.
위의 서술된 내용은 기존에 많이 알려진 얘기이고,
내가 주목한 또다른 경구가 있다.
한계가 지혜를 낳는다
현실 속 내 모습은 한계의 콘트라스트가 예상되는 지점에 근접하기 한참 전에 접거나 시도 자체를 하지 않으며 타협하며 안주한다.
한계에 도달하지 않으니 지혜는 당연히 전무하다.
지혜의 부족은 지식 범위응 협소화 시키고 지성의 혼탁함을 반복하여 강화시킨다.
단방향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에서 양방향 라이브 커머스로 변경됨에 따른 기성 홈쇼핑업체들의 몰락이나
1:1의 문자메세지에서 N:N의 메신저로 진화되는 모습이나
인간만이 아닌 세상의 모든 개체들이 변화 속 한계를 극복하며 분투하거나 사라진다.
타락과 타협한 지성이 아니라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한계의 콘트라스트(Contrast)는 제거가 가능하다고 한다.
고마 타협하고 스나브로 행동으로 옯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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