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리 딜레마 그리고 악의 평범성
우리나라에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에서 소개된 후가 아닐까 싶다.
달려오는 기차..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선택.
대전제에서 다수와 소수의 관계가 동일하다면 잠깐의 망설임은 있을 수 있겠으나 공리주의적 사고로 우린 1명의 희생을 위해 버튼은 조작할 것이다.
문제는 대전제에서 부가적 조건을 추가했을때이다.
그 소수가 나의 가까운 혈족이라면..
혹은 그 소수의 희생이 내 시야에서 행해야 한다면...
이때 윤리적으로 접근한다면 심각한 인지부조화가 발생한다.
기저의 정보로는 판단을 내리기 무척 곤혹스럽기 때문이다.
그럼 원인은 무엇일까?
신경과학 혹은 뇌과학자 중 조쇼아 그린과 조서넌 코언은 "터치"로 표현했다.
첨하자면 대상과의 거리 그것이 시각적이든 감각적이든 간에 나의 공격 대상과의 거리라는 것이다.
근래..멀리갈것도 없이 2022년 미군의 드론공격으로 알카에다 지도자가 사망했다.
마치 조이스틱을 이용한 게임처럼 드론 운용병사에게 죄책감을 상당부분 상쇄했으리라 본다.
대상과의 거리와 윤리적 죄책감은 정확히 반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에서는 한발 더 진보한다.
인간을 인간이 아닌 단순한 사물로
마치 우리가 본능적으로 전염병의 근원으로 여겨 변을 멀리하듯
공격 대상을 사물화 시킨다.
냄새나고 다럽고 최대한 천박하여 존엄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상태로 말이다.
아렌트는 단순히 모든 인간 내면을 다면적으로 분석한 결과가 악의 평범성을 설명한다기 보다는 관계의 거리를 존엄의 파괴와 연결시킨 것이다.
2024년 12월
우리가 선출한 권력이 우리를 지배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총부리를 겨누었다.
그는 군미필자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