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삶의 지향점이 흐릿할때는....
"무엇이 옳은가" 보다는
"무엇이 좋은가" 로 사고하고 결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꼭 일탈이란 말로 미화시킬 필요도 없다.
그저 한 목음 술결처럼 잔잔하게..

[지평의 융합]이란 말을 곱씹어 보면 사실상 객관적이니 정답이니 라고 나불데는 대부분이
판타레이 속 무화되는 것을 역사속에서 자주 목도하게 된다..
지금 "내가 옳고 네가 틀리다"
무지의 귀결은 늘 내재된 오류들이 부르는 도덕적 충돌로
인지부조화를 부르고 때때로 낮뜨거운 메타포를 남길 수 있다.
그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고 인정하자.
그도 힘들 땐 차라리 관조하자.
누구나 결핍이 있고 결핍이 왜곡을 극대화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주관성의 상보적인 관계가 좀더 삶을 부요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조금 틀려보여도 좋다.
적당한 긴장감은 삶의 동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에우다이모니아는 멀지 않다.

(삶은) 극복 불가능한 긴장에 만족하는 것이다.
즉 연대 개념은 사랑과 발전된 권리관계라는 인정 형태와 함께 여전히 탈전통적 연대를 산출시켜야만 할 실질적 가치들을 등장시키지 않을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연대 개념 자체가 근대적 인륜성 형태의 관계구조 속에서 특수한 것으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인정투쟁 - 악셀 호네트 저 327p]
위 구절은 라캉의 "결여(Lack)" 무한 생성 혹은 "주체의 분열"과 연계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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